- 저자
- 앙드레 코스톨라니
- 출판
- 미래의창
- 출판일
- 2023.11.10
오리엔테이션 : 새롭게 만나는 나
-사람들은 사건들 간의 연관성을 이해해야만 하고 뉴스들을 해석할 수 있어야만 해. 또한 사람들은 영감을 가져야만 하고, 수많은 채찍질과 함께 경험, 그리고 또 경험을 해야만 해. 여기에 덧붙여서 내가 쓴 책들을 아주 주의 깊게 읽어봐야만 하지. 그러면 사람들은 그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게 되지.
첫 번째 강의 : 90퍼센트가 심리학으로 이루어진 증권시장
-나는 어떤 이유들이 그로 하여금 대중의 심리가 계산될 수 있다는 견해를 갖게 했을까에 대해서 그 후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오랫동안 숙고를 거듭한 끝에 나는 비로소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개인 또는 대중의 보다 깊은 심리적 동기들 및 특정 상황에서의 그들의 반응은 사실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개개인이 내리는 결정들이 모였을 때 그 합계의 강도, 즉 대중의 심리적 반응의 강도와 시점들을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경험 있는 증권인이라면 실제로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빗나갈 수도 있는 '예감' 또는 '추측'은 할 수 있다.
-증권시장에서 심리학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나는 주장한다. 단기적 그리고 중기적으로 심리학은 증권시장의 90퍼센트를 결정한다. 증권시장에서 심리학은 매우 섬세한 손가락 끝 감각으로 운영되어야만 하는 하나의 '학문'이며, 그것은 거의 예술에 가깝다. 증권시장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단어들은 "어쩌면", "바라건대", "가능한 한", "~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지라도", "더욱이", "내 생각으로는", "내가 믿기로는", "그러나", "아마도", "나에게 보여지기로는" 등이다. 사람들이 믿고 말하는 모든 것들은 다 제한이 있고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볼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모든 증권시장에서 가장 저가의 주식은 '논리학 주식회사'의 주식이다.
-증권시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만약 증권시장이 투명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증권시장이 아니다. 대개는 주가지수가 먼저 변하고, 급히 만들어낸 이유들이 그 뒤를 따르게 된다.
-설명은 언제나 나중에 따라온다. 증권시장 또는 외환시장의 시세는 오르락내리락하며 움직인다. 그런 뒤에 수많은 참여자들, 즉 투자자, 투자 자문가, 그리고 분석가들은 서로 정반대의 주장들로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가에 대해서 아주 그럴듯한 설명을 내놓는다. 시세가 먼저 뉴스를 만든다. 그리고 나서 뉴스가 뉴스가 퍼진다. 뉴스가 시세의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비관주의는 증권시장 참여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깊이 사고하지 않고, 외부 사건들을 심사숙고하지 않으며 그저 빨리 대박을 터뜨리고 싶어하며, 투자에 참여하여 뭔가를 사거나 팔고 싶어하는 게임가, 즉 정력적인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게임가들이 증권시장에 많이 관여하면 할수록 증권시장의 분위기는 더욱 불안정해진다. 그 다음 요소는 게임가들의 행동양식 즉, 그들이 자신들의 보유자금 전부를 유가증권에 투자했는지 아니면 보유자금 이상을 투자했는지와 같은 문제이다. 게임가들이 지배하고 있는 증권시장에 정치적인 것 등 특정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이는 단순히 대중들이 투자자산을 날린 것 이상으로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일은 매우 자주 일어나는데, 증권시장의 주가지수가 올라가면 동시에 거래량이 늘어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석가들은 증권시장이 안정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시세가 상승하는 증권시장에서 거래량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욱더 많은 주식들이 '큰 손'에서 '작은 손'으로 가게 된다. 즉, 심리적으로 안정된 증권시장 참여자들로부터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증권시장 참여자에게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주식들이 작은 손들 속에 머물러 있게 되면, 주가 폭락은 곧바로 눈앞에 닥쳐오게 된다.
-대중의 심리적 반응의 강도는 단지 시장의 이러한 '기술적 심신 상태'에 달려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첫 단원을 이것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두 번째 강의 : 돈의 매력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이 많은 것은 좋다" 조지 머나드 쇼가 옳은 말을 한 번 했다. 철학자들은 '돈에 대한 욕구가 윤리적으로 정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언제나 격렬한 논쟁을 해왔다. 객관적 판정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돈의 매력과 돈에 대한 열망은 경제의 진보를 위한 엔진이라는 것이다.
현금을 가져라
-돈의 세계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돈은 방사능 물질이다. 돈은 인간을 타락시킬 수도 있고, 또한 인간의 추한 성질들을 밝은 곳으로 끌어낼 수도 있다. 오늘날 나는 돈과 관련해서 매우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한다. 그러나 항상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만일 사람들이 파라다이스로 통하는 문의 열쇠(돈)을 갖지 못하면, 파라다이스를 지척에 두고도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리하여 내 결심은 확고해졌다. '돈을 벌자.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을!'
-나는 돈을 숭배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돈을 늘리는 것을 내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내 삶의 모든 가치와 입장이 변하게 되었다. 돈 이외의 것들은 모두가 하찮게 보였다. 왜냐하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나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 어디서나 돈을 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오직 이 한 가지 사실에 달려 있지. 주식시장에 주식보다 바보들(증권시장 참여자들)이 많은가, 아니면 바보들보다 주식이 많은가." 나는 이 격언을 지금까지도 명심하고 있으며, 나의 모든 증권시장의 철학은 그 바탕 위에 세워졌다. 즉, '공급과 수요'의 법칙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객장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혼돈 속에서 '그 무엇'을 손에 넣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정작 '그 무엇'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유가증권의 낯선 이름들이 반귀머거리가 된 내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이 1평방미터 당 허풍쟁이들과 바보들의 밀도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의 증권시장은 오늘날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모든 주식 거래가 객장의 통신 부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나는 파리에서 돈을 숭배하는 새로운 직업을 얻는 것이다.
-나는 이미 스스로 똑똑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곧장 돈이 어느 것보다, 심지어 사람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따라했다. 나는 증권시장에서 증권시세가 떨어졌을 때 투자는, 이른바 약세장 투자를 시작했다. 거기에는 나의 지적 오만 즉, 우월감도 당연히 개입되어 있었다. 이곳의 허풍쟁이들과 바보들에 대한 내 생각은 부정적이어서 나는 그들과 반대로만 실행했다. 즉, 그들 대부분은 주가가 올라갔을 때 시장에 개입을 했지만 나는 주가가 하락했을 때 시장에 개입했던 것이다.
-우연히도 나는 이를 통해 성공을 거두었다. 시장을 추락하는 주식 시세와 함께 침체, 즉 커다란 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가는 하락하고 또 하락했다. 나는 매일 결산을 하면서 이윤을 확인했다. 나는 주식 시세가 떨어졌을 때 계속해서 투자를 했기 때문에 내 이윤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나는 이를 '우연히'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결코 근본적인 이유로 인해 약세장 투자자가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시장에 개입했던 동기들은 단순하고 개인적이며 심리적인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결코 물질적인 논리를 알지 못했다. 또한 경제에 대해 비관론적이지도 않았다. 단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오직 한 가지, 돈을 벌기를 원했었다.
-약제장 투자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측면이 있다는 걸 1932년 그 유명한 이바. 크뤼거 은행이 파산했을 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주식 거래에서 손해를 보았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이 그로 인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새로운 '나의 윤리'를 얻었다.
-그 때 나는 앞으로는 주가가 올라갈 때 투자를 하고 이윤을 내지, 주가가 폭락했 때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든 결정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이윤을 냈다. 그 당시 세계 경제는 최악의 침체상태에 도달해 있었으며, 그때부터 다시금 천천히, 그로나 꾸준히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약세장 투자자에서 강세장 투자자로 돌아서는 길을 쉽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시세가 좋아졌을 때 돈을 벌 수 있는 행복한 입장이 되었다. 물론 이번에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였다. 나는 이처럼 일반적인 행복과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것을 분명히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가끔은 나 자신을 억제할 수 없으며, 역설적이게도 이웃 사람들을 경멸적으로 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내 젊은 시절의 불손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젊은 시절 나는 나의 불손함 때문에 아주 중대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국가의 적' 코스톨라니
-바람직한 투자자라면 언제나 자유로워야 하며 대중 심리적 분위기에 감염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대중을 조금이라도 경멸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분명히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가끔은 나 자신을 억제할 수 없으며, 역설적이게도 이웃 사람들을 경멸적으로 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내 젊은 시절의 불손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젊은 시절 나는 나의 불손함 때문에 아주 중대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나는 지난해에 감상적인 기분에 휩싸여 나에게 큰 고통과 성공을 동시에 경험하게 했던 '훌프라' 주식을 어느 정도 매입했다. 오래된 것이었으며 아마도 한 주당 가격은 10페니히(약 50원)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후 기록적인 유가증권의 폭등으로 인해 그 동안 내가 원해서 보유했던 추억의 증권들 중 몇 종류는 200마르크(약 10만원)를 호가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자기만족이다. 자기만족의 특정한 변화를 나는 지금까지도 실행하고 있다. 내가 투자한 종목의 시세가 불리하게 전개될 때에, 나는 결코 동요하지 않으며 그 주식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외교, 조세 및 금융정책, 세계에서 일어나는 무역관련 뉴스와 현상들을 나는 자세하게 관찰하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모험적인 분석이 내 전공이다. 그러나 주식 시세가 항상 논리적인 것은 아니며, 주변의 현상을 언제나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증권시장의 반응은 일시적으로는 자주 예측할 수 없으며, 대부분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기대했던 것과 같이 발전된다. 물론 나는 주식 투자에 있어선 영원한 낙관론자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음악적으로 잘 훈련된 내 귀에 불협화음을 울려 대지만 나는 전혀 듣고자 하지 않는다.
-증권시장의 추세가 나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때에는, 일부러 자기 최면을 걸고 확신을 갖고 기다린다. 이는 내가 시세에 비관적인 때가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그 해악에 대해 일찍 터득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오랫동안 나는 파리 증권시장을 경멸을 가지고 대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월스트리트에 대해 동일한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그곳에는 내가 가끔씩 관계를 맺고 있는 증권 중개인 조합이나 회사가 적어도 열 개는 된다. 그러나 나에게 나쁜 시세를 알리는 것은 그들 모두에게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나에게 부정적인 시세를 알리고자 시도하는 브로커는 나로부터 더 이상의 주문서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나에게 잔인한 시세 폭락을 전달한 사람에게는 고통을 준다. 그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고객으로서 나를 잃게 된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음악을 즐기고 있을 때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면 나는 살인적인 증오심을 갖게 된다.
돈과 이자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말라
-이렇게 피가 튀기는 현장에서 오랫동안 투자자로 살아오면서 나는 "돈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알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아주 민감한 후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남들과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젊어서부터 세계 여러 증권시장에서 쉽게 돈 버는 법을 배운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빚진 듯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나는 가끔 지식인, 교수, 또는 의사가 일 년 내내 이어지는 긴장과 연구의 대가로 받는 연봉의 액수가 증권인들의 일순간의 착각이나 실수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나는 그 사이 성숙해진 인격으로 빚을 갚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증권시장이 인간들을 자극했다. 나도 언제나 그림, 좋은 음식, 음악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나와 오로지 돈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자 했으며, 나를 단지 '증권시장의 그 사람'으로 대하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손님을 후대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만약 여러분들이 작가, 예술가, 또는 문필가들을 초대하고자 한다면, 절대로 나를 초대하지 마십시오! 내가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분위기를 망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느 TV 쇼에서 "당신은 돈의 매혹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짧은 질문을 받았다. 나는 결코 더 이상 돈을 매혹되어 있지 않다고 대답을 해야만 했다. 물론 인간은 독립과 자유를 위해,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는 편안함을 위해 돈을 필요로 한다. 유감스럽게도 머리가 그리 좋지 않은 나의 오랜 친구 에르스트 멘저가 매우 진실한 말을 했다. "젊은이들이 돈을 가졌다면 돈은 그들에게 어떠한 역할을 할까? 나이든 사람들에게 재산을 갖는다는 것은 커다란 만족과 안전을 의미하는 데 말이지." 나는 별로 낭비를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졌다.
채무자와 거지
-겸손과 절약이 결코 최고의 미덕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젊은이들에게 있어 더 큰 위험은 컴퓨터가 그들을 대신해 계산과 생각을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일련의 편안함과 게으름이 그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는 데 있으며, 나는 그것을 우려하고 있다.
-투자자는 절대로 빚으로 투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빚을 지지 않은 사람만이 자산의 생각에 온전히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융자와 그로 인한 부채 규모는 끊임없이 증가한다. 오늘날의 부채규모는 20년 전과 결코 비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돈의 구매력은 크게 떨어진 반면에 경제의 생산성과 함께 채무자의 채무변제 능력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인내를 가져야 하며,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거의 '잠을 잘 수 있어야 한다.(진정한 투자자는 눈을 뜬 채로 자는 악어처럼 잠을 자야 한다!)'
-돈에는 어두운 면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 없이 돌아가는 현대사회를 나는 상상할 수가 없다. 칼 마르크스와 그 이전의 토마스 무어도 돈 없이 돌아가는 사회를 그렸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은 유토피아에나 존재한다. 자본주의는 번영하기 위하여 돈을 필요로 하며, 복지가 향상되면서 부자들이 더욱 부유해지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더 이상 가난해지지 않고 자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돈과 자본유동성을 필요로 한다. 이미 칼 마르크스의 어머니도 "만약에 칼이 자본론을 쓰기 위해서 필요했던 돈보다 더 많은 자본을 가졌었다면......"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가 책에서 예측했던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많은 것들은 대부분이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실현되었다.
세 번째 강의 : 무지한 대중
-구스타브 르 봉은 그의 고전적 저서 [대중심리학]에서 "대중은 알지 못한다."고 기술했다. 만약 천재에 가까운 100명의 인간들이 좁은 한 공간에 몰아넣어진다면, 이들은 정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정에 의해서 지배된다.
-한 증권시장 전문가가 이러저러한 이유와 충분한 심사숙고를 거쳐, 자신이 보유한 모든 주식을 팔기로 아침에 결정했다고 치자. 객장으로 나간 그는 매우 낙관적 분위기가 그곳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몇 초 뒤, 그는 조금 전까지의 결정과 계획을 바꾸어, 자신의 주식을 파는 대신 새로운 주식을 더 사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들 증시 전문가들의 변덕이 매우 커다란 역할을 하며, 때로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수십만 명, 어쩌면 수백만 명이 이들 변덕쟁이들의 뒤를 따라 모든 거래를 잘못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만약 시세가 상승하게 되면, 개미들은 떠나는 기차에 빨리 뛰어오르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주식을 매입한다. 그러면 변덕쟁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세가 대중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며, 개인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힘을 행사하여 동행하도록 만든다. 변덕쟁이는 전쟁터의 깃발과도 같은 것이다. 깃발이 높이 솟구쳐 있고 힘차게 전진하는 한, 군대는 그 뒤를 따라 행진하게 된다. 그러다가 깃발이 내려지면 병사들은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전진을 멈추게 된다. 사기는 떨어지고 군대는 각기 흩어지게 된다. 이와 똑같은 일들이 증권시장에서도 일어난다.
-그렇게 때문에 강세장 투자자라면 깃발이 자랑스럽게 나부끼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항상 주의 깊게 살펴야만 한다. 만약 그런 상태라면 군대는 분명히 뒤따른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내막을 아는 사람들을 '시세 부양자'라고 부른다. 미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아주 조금이라도 추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시장의 기술적인 기초에 대한 분석이 최고의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단기적 그리고 중기적으로는 심리학이 증권시장의 90퍼센트를 결정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근본적 이유들이 보다 큰 역할을 한다.
-심리학 외에 증권시장의 단기적 추세를 결정하는 요소로 시장의 기술적 기초가 있다. 이는 주식이 충분한 자본과 배짱을 가진 투자자의 손에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 즉, 겁쟁이 투자자의 손에 있는가를 말한다.
-단기적으로 볼 때 경제 상황은 증권 시세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 주식 매수자가 매도자보다 더 강한 물질적 또는 심리적 압박상태에 있을 때만 시세는 상승한다. 그리고 증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증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응이 증시에 영향을 준다.
-심리학 외에, 증권시장의 중기적 추세에 대한 결정적 요소는 금리이다. 소위 자본시장의 유동성인 금리는 증권시장에서 수요와 공급 중 어느 쪽이 더 올라갈 것인가를 결정한다. 금리는 일차적으로 채권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만약 금리가 떨어져 채권의 수익성이 낮아지면, 많은 유동성 자금들이 증권시장으로 몰린다. 그러나 증권시장에 대한 이러한 금리효과는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서 느낄 수 있게 된다. 즉, 중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 추세를 놓고 볼 때, 심리학은 이제 더 이상 그렇게까지 근본적인 요소가 되지 못한다. IBM, 지멘스, 다임러, 벤츠 등은 만약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기본적인 요인들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처럼 주가가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 기업들의 주가를 그렇게 높인 것은 결코 심리학이 아니다(어느 누가 훗날에 대한 걱정, 기대, 그리고 평가를 지금 앞당겨 보기를 원하겠는가? 존 메이나드 케인스는 "장기적으로는 우리 모두 죽는다!"라고 설파했다). 일반적 경기변동과 특히 산업부문 경기가 주식의 질과 미래 수익을 결정한다. 따라서 한 산업부문의 발전을 몇 년 앞당겨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는 사람은 큰돈을 벌 수 있다. 내 견해로는 다음의 두가지 기본요소들이 증권시장의 시세를 결정짓는다. 그 나머지 요소들은 결국 이 두 가지 요소에 포함된다.
1.통화량과 신주발행
2.심리적 요소(낙관주의 또는 비관주의 등), 즉 미래에 대한 예측
-모든 사건들, 모든 정치적/경제적/금융적 수단들이 의미가 있는 없든, 결국 그것들은 이 두 가지 사실에 접하게 된다. 나는 이 이론을 이미 오래 전에 다음과 같이 하나의 수학 공식으로 나타냈었다. 이것은 증권시장의 시세를 결정하는 기본원칙이다.
시세=돈+심리
여기서 '돈'이라는 요소를 나는 증권시장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돈으로 이해했다. 만약 돈이 꾸준히 채권의 높은 이자율에 투자되면, 그리고 만약 은행이 정기예금에 대해 높은 이자를 지불하게 되면 주식을 살 수 있는 돈은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돈'이라는 요소는 장기적 금리에 달려 있다.
-이와는 달리 '심리'라는 요소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여러 부차적인 요소들의 산물이다. 만약 어느 한 회사의 이익과 배당금이 줄어들고 세금이 올랐다고 가정한다면, 그 회사의 주식을 매수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대중이 미래를 낙관적으로 평가한다면 그러한 악재 속에서도 매수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악재들은 단기적으로만 영향을 끼치고 말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요소는 이러한 경우 악재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머무른다.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나 평화가 증권시장의 시세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 이에 대한 대중이 심리적 반응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느 한 주식의 가격, 이윤 비율에 대한 평가도 사실은 순수한 심리적 환경의 소산이다. 왜냐하면 '저평가 또는 고평가'라는 판단은 결코 산술적인 것이 아니고 심리적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상대적 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 명의 애널리스트들이 이러한 가격관계의 최면에 걸려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다.
-우리는 애널리스트들을 따라서 가치평가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가격, 이윤 비율'의 이론에 따르자면 그 가치는 항상 마이너스 상태에 놓여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지는 주식은 적자상태에 있는 회사의 주식이다. 적자상태일 때 주식을 샀는데 그 회사가 회복세에 들어서게 되면 시세는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1980년대 초반 증권시장의 위기 때 어려움을 겪은 미국의 자동차 기업, 크라이슬러 주식의 경우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 나의 투자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 정부가 전통적인 기업인 크라이슬러가 파산하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기의 회복과 자동차 수요에 있어서 엄청난 반등이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더욱이 나는그 회사의 새로운 총수인 리아이아코카를 믿었다. 크라이슬러의 경우는 그보다 더 큰 열매를 내게 가져다주었다. 나는 5달러에 산 주식을 105달러에 팔았던 것이다.
일상생활의 논리와는 다른 증권시장의 논리
-투자에서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간단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네. 모든 존재가 이러한 진실에 기인하고 있으며 경험이 그것을 보여준다네. 사람들은 결국 목표에 도달하지만 그렇다고 꼭 반듯한 길 위로 가는 것은 아니라네!
-나의 '증권시장 수학'은 거의 형이상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그러나 종교 또는 예술과 같은 다른 분야의 삶에서도 이 법칙은 적용이 된다네. 특히나 음악은 정말 긴장과 이완의 편차 위에서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아름다운 멜로디의 비밀이라네."
-만약 자네의 생각이 정말로 논리적이라면 언젠가는 자네의 뜻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문제는 그 시기야. 그래서 주춤거리게 되거나 심지어는 생각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이끌리기도 하는 것이지. 어제까지만 해도 확실했던 것이 오늘은 불확실한 것일 수 있다네. 그러나 만약 자네의 투자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이 그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모든 것은 오로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그 무엇인가가 비정상적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평가할 수 있어야 할 것이야. 그리고 사람들은 징후를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네. 만약 진단을 통해 지나가는 악재를 인지한다 하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꿋꿋하게 버틸 필요가 있네. 그러나 만약 전쟁 또는 평화,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또는 금융적 결정, 정부의 정책 등 기본적인 요인들에 변화가 생기면 즉시 결론을 내려야 하며, 비상시라고 생각되면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스럽고 고가품이었던 것들을 즉시 바닥에 던져버려야 한다네.
-어마어마한 자본을 가진 수많은 투자자들이 동일한 부문에서 자네와 비슷하게 똑같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거지. 그들은 동일한 물건과 유가물을 샀으며 또한 동일한 것들을 몽땅 팔기도 했다네. 그 결과 시세가 오를 때 자네가 투자를 했던 시장들은 초과매입 상태가 되었으며, 자네가 하락하는 시세에 투자를 했던 시장들은 초과매도상태가 되었지.
-사람들이 투자를 하도록 만든 근본적 이유들이 기술적 이유들로 상쇄되는 경우도 일어날 수 있다네.
-결국 주가가 이동하는 것은 오로지 수요와 공급 변화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네. 증권시장이 개장하는 어느 하루에 이루어진 모든 매도 및 매수주문이 과연 어떤 동기에 의해 이루어지는지 한 번 연구해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울 것 같네.
-그들이 기대했던 시세 상승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것 때문에 시세는 하락하게 되는 것이지. 이런 동일한 과정이 정반대의 경우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네.
-주가는 하락하고 또 하락하여 논리적으로 최저치에 도달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가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조금 높은 시세에 머물러 있네.
-이것을 증시 용어로는 '페다 꼼쁠리(Fait accompli 기정 사실)'라고 부른다네.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바로 전에 팔았는데 이 주식들이 이제는 회사의 파산을 감수할 용의가 있으면서 동시에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수중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지.
-이미 오래 전에 많은 양의 주식을 공매도한 하락장세의 투자자들은 이제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확실하게 이득을 챙기게 되겠지. 그들이 주식을 다시 사들이면서 시세는 상승하고 말이지. 나는 위와 같은 현상을 수도 없이 경험했어.
-시세의 변화는 특정한 사실에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 전쟁의 위험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많은 투자자들은 서둘어서 그들의 유가증권을 팔겠지. 그러나 정작 선전포고 당일에는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시세가 상승하거든.
-당시에 나는 스스로 금융 대란에 대비하고 있었지. 나는 모든 은행들이 문을 다을 것이며, 증권시장도 정상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어. 나는 외환규정이 더욱 엄격해지리라 생각해서 그에 대비했고 주말을 신경과민적 긴장 속에서 보냈다네. 그러나 길거리에 나섰을 때 나는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 말할 것도 없이 은행들은 모두 문을 열고 있었고 증권시장도 역시 정상적으로 거래를 하고 있는 거야.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지. 그러나 가장 놀라웠던 것은 증권시장의 주가지수도 180도 선회했으며 그 후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상승했다는 사실이네. 이것이야말로 바로 완벽한 페따 꼼블리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 당시 시세폭락을 예측했었던 투자자들에게는 정반대의 사실이 왔던 것이네.
-자네의 논리는 단지 통계적,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기타요소들과 같은 소위 기본적인 요소들에만 의지하고 있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앞에서 언급한 기술적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한 마디로 자네의 생각은 너무 이론적이야.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현실하고는 맞지 않는 것이네.
-사람들은 가끔 어안이 벙벙해하며, 증권시장은 왜 경기하락에도 불구하고 상승하며 경기가 호황기인데도 하락하는지를 묻곤 한다. 증권시장 추세와 경기변동 추세는 서로 간에 상호의존하고 있으며 동일한 법칙에 지배되고 있다. 그러나 결코 평행선 상에서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나의 설명이다. 몇 년 전에 이미 나는 그 당시 가끔 인용되어지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든 적이 있다.
"한 남자가 그의 개와 함께 길을 따라 가고 있는 그림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남자는 일정하게 앞으로 걷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경제이지요, 개는 앞으로 달려가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그의 주인에게 돌아옵니다. 다시금 앞서 달려 나갔다가 또 다시 돌아옵니다. 개가 걸어 다닌 길이 증권의 움직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주인과 개, 둘 모두 앞으로 나아갑니다. 마침내 그들은 산책의 목적지에 함께 도달합니다. 주인이 1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개는 동일한 산책길을 왔다갔다하면서 3킬로미터 또는 4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증권시장의 움직임도 이와 아주 동일합니다. 그들은 앞서거리 뒤서거니 하며 경제적 확장에 동행합니다."
-돈과 신용상황, 그리고 대중심리, 이 두 가지 근본적인 요소들은 경기변동이나 증권시장 또는 경제에 동시에 작용하지 않는다. 화폐시장과 경제적 삶은 유기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관계는 사업상으로는 아주 적절할지 모르지만 증권시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내 생각으로는 개별 주식이 아니라 전체 증권시장의 시세를 놓고 볼 때, 더욱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근본적인 사실보다는 환상과 돈이라는 요소이다. 물론 거리에도 예외는 있다.
-한 주식의 정확한 가치와 시세가 절대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주식의 시세는 언제나 그 가치보다 높거나 또는 낮다. 그렇다면 주식의 가치라는 것이 정확히 측정 가능한 것인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한 제조회사의 정확한 가치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증권시장이 존재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하나의 주식값을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 우리는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로 증권시장 추세를 예측하고자 하는 모든 실험들이 좌절을 맛보는 것이다.
-어떤 주식에 대한 추정과 평가는 투자자들에 달려 있다. 그러나 사람마다, 그리고 동일한 사람일지라도 한 기업의 전망과 미래에 대한 의견은 날마다 변한다. 많은 요인들이 평가에 영향을 끼치며 매도자의 감정과 개인적 문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체 증권시장의 추세를 평가하고자 할 때도 이러한 것들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마지막으로 증권시장의 분위기는 증권시장 참여자들간의 타협에 달려 있다. 그들의 과반수가 낙관적인지 또는 비관적인지에 대한 타협 말이다. 이로부터 발생되는 소위 증권시장 분위기는 시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증권시장의 기분 또는 분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논리학을 따르지 않으며 자주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다. 증권시장의 논리는 일상생활의 논리와 같지 않다.
시세가 상승하면 사람들은 몰려오고 시세가 하락하면 사람들은 떠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밀물과 썰물 같은 순환, 사계절의 연속, 변화하는 달의 끊임없는 순환 등의 자연 상태를 보여준다. 사회적 삶 속에서 우리는 경제에서의 호황과 불황, 민족 간의 전쟁과 평화-요컨대 인간 공동체의 역사-속에서 낙관주의(혁신)와 비관주의(정체) 간의 왕복운동 등의 순환들을 만나게 된다. 증권시장도 이와 똑같다. 이곳에서도 대중심리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여 이러한 끊임없는 움직임을 가능케 한다.
-증권시장의 순환은 다음 세 종류위 발전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1.조정국면
2.적응국면 또는 동행국면
3.과장국면
상승운동을 예로 들어 보자. 새로운 첫 번째 단계 동안 아주 큰 폭으로 하락했던 시세가 어느 정도 현실적이고 적당한 수준으로 조정된다. 두 번재 단계에서 시세는 진행되는 사건들과 평행으로 발전하게 된다. 만약 이러한 사건들이 특정 종목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그 종목의 시세는 적절한 수준으로 다시 떨어진다. 그러나 만약 사건들이 호재로 작용한다면 이들 종목들의 시세는 상승운동에 동행한다. 두 번째 단계의 어느 시점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계속 작용한다면 자동적으로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 위험이 뒤따른다. 상승시장의 이러한 단계에서 시세는 매 시간마다 높이 뛰어오른다. 시세와 증시 분위기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단계적으로 상승한다. 상승된 시세는 장밋빛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낙관론자들은 끝 모를 행복감에 젖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이제 시세를 계속 상승 쪽으로 몰고 간다. 결국 군중의 히스테리가 시세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세 번때 단계의 낮은 시세는 순환적 하강운동에서 무거운 비관주의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비관론은 다시금 가격을 억누르게 되고 시세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과장단계의 이러한 하강 파도 또는 상승 파도는 모종의 심리적 전기충격이 악마의 순환을 돌파하고자 할때까지 이어진다. 반대의견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라도 전기충격이 오지 않으면 마지막 단계는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식할 만한 뚜렷한 동기도 없이, 이에 대한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을 투자자들과 특히 전문가들에게 아주 커다란 놀라움을 선사하면서 시장의 시세는 극적으로 반전한다. 이제 순환의 반대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증권시장에서의 영원한 회전 또는 윤회여행이다.
-그러면 이러한 세 단계에서 투자자는 각각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소위 하강운동의 세 번째 단계인 과장국면에서 주가가 계속 떨어지는 상태에서 매입을 한다. 그리고 주가가 더 떨어진다 하더라도 놀라서 허둥거리면 안 된다. 왜냐하면 부다페스트의 곡물 거래소에서 노련한 투자자들이 이미 말했던 것처럼 "가격이 하락했을 때 밀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은 가격이 올라도 밀을 갖지 못하기"때문이다. 상승운동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시세가 저점을 통화했기 때문에 계속 매입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관객으로만 머물며 시장의 움직임에 단지 수동적으로만 대처한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행복감에 동행하기 위해 슬슬 준비를 차린다. 이렇게 증권시장의 순환적 움직임 속에서 투자자들의 3분의 2는 추세와는 반대로, 3분의 1은 시세와 함께 가고자 할 것이다.
-투자자가 하강운동의 세 번째 단계인 과장국면에서 추세와 반대로 간다는 것. 이는 동료들, 대중매체, 그리고 전문가들이 매도를 권장하는 상황에서 반대로 행하는 것을 뜻하며, 일반적 추세에 역행하여 주식을 매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은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론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조차도 마지막 순간에는 군중심리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각을 바꾸고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라고 말하며 군중의 물결에 휩쓸리고 만다. 그러나 이번에도 자신의 결정이 최선책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따라서 투자자가 군중 히스테리를 떨쳐 버리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을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믿지 말아야 하며 조금은 건방진 면이 있어야 한다. "너희들은 모두 바보야. 나 혼자만 뭔가를 알고 있지." 또는 "어쨌든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약간의 교육이 필요하다. 그것들이 결코 훌륭한 특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 그리고 부득이한 조건 하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주 유익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증권시장에서 단지 소수만이 성공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며, 대다수는 손실을 보는 쪽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존 트레인은 만약 누군가 투자에서 확실하게 성공하려면,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잘못되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금융계에서 어떤 일치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성공적인 투자자들은 즉시 그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은 잘못되기 마련이므로 이제 그 성공적인 투자자에게는 사냥감이 풍부한 사냥터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한 단계에서 언제 다른 단계로 넘어갈 것인가를 정확하게 계산해 낼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은 없다.
-매우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이 흔히들 '손가락 끝 감각'이라고 부르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숱한 경험과 산전수전 다 겪은 투자자도 잘못 예측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필수적인 경험을 수집하기 위해 자주 헤매야 한다. 자신의 생애에서 적어도 두 번의 파산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투자자'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어두운 공간 속에 있다. 그러나 이미 수십 년 동안 이 방에 머물러 온 사람이 바로 얼마 전에 들어온 사람보다는 틀림없이 더 쉽게 올바른 길을 찾을 것이다.
네 번째 강의 : 공항-대중심리의 한 예
-"고통은 그 자체로는 긍정적이다"라고 심리학자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행복은 고통이 없다는 뜻이다. 투자자에게 있어 유일하게 긍정적인 고통은 손실, 약세장 투자, 또는 그보다 더한 주가 폭락과 같은 것이다. 주가 폭락은 투자자의 상태를 감지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이며 폭락이 갑작스럽게 오면 올수록 그 상태는 더 잘 드러난다. 주가 폭락은 갑작스럽게, 그리고 신들의 복수와도 같이 격렬하게 오는 반면에, 시세가 상승할 때는 부드럽기가 그지 없다. 사람들이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한 발짝 한 발짝씩 기어오른다. 주가 폭락은 재산을 한 순간에 붕괴시킨다. 먼저 갑작스런 충격으로 재산을 깨드리고, 그런 다음 결국에는 재산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만약 바로미터가 안정적이면 증권시장의 상황은 만족스럽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면 투자자는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증권시장이 잘 돌아가면 이는 투자자에게 지극히 정상인 것으로 보이고, 질서가 잡힌 것처럼 보인다. 그는 상황이 잘못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더욱이 매우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하면 그는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다가 정말 증권시장이 폭락하고 시세 하락이 그의 재산을 갉아먹게 되면 그는 그제야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운명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낀다. 이제 이윤은 환상이고 손실만이 현실이다. 전쟁과 주가 폭락은 역사의 기나긴 길 위에 있는 이정표이다. 그것들 스스로가 역사이고, 역사를 끌고 가며, 역사를 여러 시기로 나눈다. 증권시장의 역사는 호황과 주가 폭락같이 좋은 시기와 나쁜 시기간의 교환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들은 결코 뗄 수 없는 짝이다.
-호황이 앞서지 않은 주가 폭락이 없고, 주가 폭락으로 끝나지 않은 호황은 없다.
-오늘도 투자자들은 1987년 10월 19일의 세계적인 주가 폭락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다. 도대체 이러한 참사가 어떻게 올 수 있었단 말인가?
-1987년 여름, 아무런 까닭도 없이 금리가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는 것보다 낙관론자들의 전망이 더 우세했다. 그리하여 주식 시세는 바퀴가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 듯이 계속해서 높게 치솟았다. 그러자 슐레징어의 지휘 아래 독일 연방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이자율을 높였다. 그 뒤를 따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한번 미국의 금리를 인상시켰다. 그것이 바로 부풀대로 부푼 풍선을 터뜨린 바늘 끝이었다. 투자자들은 풍선 속의 공기는 금리 상승과 함께 몇 개월 뒤엔 저절로 풍선에서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최고치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시세가 25퍼센트 하락하는 것이나 상승운동이 5년 동안 이어지는 것이 내게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나는 이미 20번이나 이런 일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도, 시세가 이미 7~8월에 최고치에 도달했으며 이미 약간 떨어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다우존스 지수가 하루에 500포인트나 빠진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폭락장이 들어서서 시세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 것은 몇 가지의 기술적 사건의 결과였다.
-우선 시카고에서 도박꾼들의 횡포가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약 5포센트의 보증금만 내고 신용으로 주식거래를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수십억에 달하는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는 완전한 타락한 상태였다. 지수계약을 가지고 하는 거래는 비뚤어진 게임의 한 가지이다. 오늘도 유혹자는 이러한 왜곡된 게임을 가지고 그들이 증권시장으로부터 벌어들여 조성한 거대한 카지노로 대중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시장에는 기관의 주식 소유자를 제외하고는 무엇보다도 소액 투자자들이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수는 평균가격일 뿐이며 별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지수라는 것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지수거래는 인플레이션 동안에 현물 정기거래를 통해 많은 돈을 번 시카고 중개인들의 발명품이다. 인플레이션이 성공적으로 잡히고 나서 더 이상 현물거래로 돈을 벌기 어려워지자 그들은 지수계약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1990년 7월에 약 17만 달러이 액수에 달하는 500여 종의 주식으로 지수계약이 시작되었다. 이것을 놓고 게임을 하기 위해 그들이 투입하는 돈은 단지 1만 달러에 불과했다.
-은행원들의 말에 따르면 매입한 증권의 94퍼센트가 신용으로 산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승효과는 희소가치를 갖게 된다. 현물 선물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적어도 10퍼센트는 투입해야 했던 20년대의 증권시장에서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그러나 소액 계약 투자자들은 500여 주식들의 시세에서 형성되는 계약의 가치를 전혀 스스로 계산할 줄 모르기 때문에, 얼마 전부터 이들을 위한 새로운 방법이 생겨났다. 즉, 머리를 짜서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거래자의 컴퓨터는 매분마다 증권시장의 총 500개 주식 중 약 50~100개 주식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500개의 주식 중에서 어떤 50~100개의 주식을 선택할 것인가도 물론 컴퓨터가 계산한다. 평균치와 가장 평행으로 움직이는 주식들이 있다.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나는 수치에 따라 거래인은 반응을 한다.
-금리 상승으로 인하여 시세가 하락하면 거래인들은 돈을 더 많이 밀어 넣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시세하락은 그들의 5퍼센트 보증금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만약 불입금이 몇 분 내에 정확히 불입되지 않으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계약은 강제로 집행되어 버린다. 그것이 대량매도의 첫 번째 파도인 것이다.
-1987년 10월 19일 폭락의 두 번째 기술적 요인은 다음과 같다. 그들의 증권구좌에서 수십억의 주식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소위 매우 영리한 골든보이들이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뉴욕 한 군데만 하더라도 그들의 동료 중 6만 명이 좋은 직장과 호화 아파트 그리고 고급 자동차 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가증권을 '보증하고자'했다. 즉 그들은 수십억의 주식을 시카고 지수시장에서 기간을 두고 매도했다. 이와 함께 가격은 더욱 더 바닥으로 급격히 곤두박질쳤다.
-강제집행, 기관의 유가증권 완전매도, 대중의 소란, 이 모든 것들이 1987년 증권폭락을 야기시킨 주요 요소들이다.
-영혼 깊숙한 곳의 어두운 힘들이 폭락을 불러일으킨 게 아니라, 그보다는 오만이 폭락을 불러일으킨 것이라는.
-호황일 때 투자자들은 특히 방자하게 된다. 행복감에 쌓인 그들은 풍선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바늘 끝은 언젠가는 다가오게 마련이다. 다음과 같은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시세상승 및 시세하락, 행복감과 폭락, 밀물과 썰물은 모두 순환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차이가 있다. 해양학자는 썰물과 밀물의 차이를 1초 안에 게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증권시장의 늙은 '해양학자'인 나조차도 폭락의 정확한 시점과 강도를 예견할 수 없다.
-나의 신조, 즉"언제나 겁을 먹어라. 그러나 절대 놀라지는 말라!"가 다시 한 번 옳다는 게 증명되었다. 칼럼에는 굵은 글씨체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증권시장의 다음 폭락은 틀림없이 온다. 그러나 시장이 오랫동안 상승세를 지속하게 된다면 소련에 감사하라!"
고르바초프 시세 상승
-지금 세대들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계적인 경기 호황에 우리가 지금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 70세만 되었어도, 즉 좀 더 젊었다면, 상습적 비관론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이후 3년 동안 사람들이 증권시장으로부터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는 것이 이를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시장에서 '지도자'자격증을 받기에 3년이란 세월은 결코 충분하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40년간의 수련이 필요하다.
컴퓨터가 투자를 할 수 있을까?
-1987년 10월 19일 증권시장의 대폭락 이래 정치가, 교수 그리고 증권시장 관계자들은 이와 비슷한 극적인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교수들과 장치가들은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항 경험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때에도 정확한 진단은 바로 필요한 처방을 내리기 위해 예측을 하는 것이다.
-오랜 증권시장 경험을 통해 나는 지수선물거래를 약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갖게 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10월 19일의 연쇄폭락의 근원지가 시카고의 지수선물시장이었다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내 의견을 설명하기 이전에 먼저 프로그램 매매가 무엇인지, 그리고 금융시장에서 컴퓨터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컴퓨터에 대한 가장 큰 도전자이며 개척자인 토마스 왓슨 주니어가 만약 오늘날 컴퓨터가 금융세계의 모든 재해에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지를 듣는다면 무덤 속에서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넌센스이며, 불쌍한 컴퓨터는 실상 아무 죄도 없다. 컴퓨터가 실행하는 모든 것들은 금융매니저들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그럼 프로그램 매매란 무엇이며, 무엇이 잘못되엇는가에 대해서 알아보자. 원칙적으로 프로그램 매매는 '스톱-로스(stop-loss)' 방법으로 거래를 빠르게 회전시키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면 가능한 빨리 팔아서 손실을 적게 하며, 이와 반대로 가격이 상승하면 계속 상승하기 전에 빨리 사들여서 이익을 늘리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시장이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정말로 혼란스러웠던 20년대의 월스트리트에서 유래된 것이다.
-오늘날 "스롭-로스' 혹은 '스톱-바이' 주문은 증권시장 거래에서 금융매니저들이 사용하는 있는 가장 중요한 두구이다. 그들이 버릇이 되어 오랜된 증권시장의 좌우명에 따라 행동한다. "시세가 하락하면 더 떨어뜨리고 시세가 오르면 더 올린다." 그 결과 거래는 '스톱-로스' 방식으로 지속된다. 이는 주식이 어느 특정시세까지 하락했을 때 매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결코 그 특정시세 위에 있을 때는 팔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주식이 지금 100에 있다고 하자. 이는 컴퓨터에 입력된 '스톱-로스' 매도거래서에는 '90에 매각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1만 명의 거래자들이 '스톱-로스' 매도거래서를 90에 그들의 컴퓨터에 입력하여 그 매도신청이 실제로 처리된다면 시장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뻔한 이치이다. 동시에 일어난 매도는 시세를 다시 85 방향으로 밀어 넣고 새로운 '스톱-로스' 매도 거래서들이 동시에 입력되면 시세는 또 80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그러면 새로운 '스톱-로스' 거래서는 80에 팔아 버릴 것을 지시한다. 그렇게 하여 시장은 급락과 소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게 된다.
-이러한 프로그램 매매에서 컴퓨터의 역할은 단지 '스톱-로스' 주문서을 등록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시세 또는 지수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큰 폭으로 하락하면 컴퓨터는 금융매니저가 지시한대로 주식과 지수계약을 팔아치운다. 시세가 많이 하락하면 할수록 매도량은 늘어난다. 반대의 경우도 이와 꼭 같다. 커퓨너는 주식을 많이 매수해야 하지만 그것은 시세가 어느 특정 높이만큼 도달했을 때이지 결코 그 아래에서는 아니다.
-'스톱-로스' 매도가 1987년 10월 그리고 1989년의 폭락에 책임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당시의 프로그램 매매는 아노의 게임 방법과 비교했을 때 결코 새롭거나 혁신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대다수 투자자들의 원칙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윤은 계속 나도록 하고, 손실은 제한하라!"
-투자자로서 70여 년을 보낸 오늘날 나는 장기투자자이며,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순환과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그리고 장기적 관점 하에서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울게 되었다. 프로그램 매매자는 이윤을 낼 수도 있으며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가서는 파산하게 된다.
-시카고에서 거래되고 있는 지수 계약은 일정한 컴퓨터 신호에 따라 수십 억이 팔린다. 이때 일초라도 심사숙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이 컴퓨터를 통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사람들이 밤새 잠 못 이루어 가며 무엇을 할 것인가 골똘하게 생각하고 심사숙고한 다음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히스테릭하게 일어난다.
-투자자는 사색가여야 하며, 미친 군중과 컴퓨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IBM의 창립자인 왓슨 주니어도 분명 인간들의 자유로운 생각이 컴퓨터에 의해 통제당하거나 또는 타락할 수 있을 거라는 걱정을 했었다. 그렇ㅎ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모든 직원들의 책상 위에 "생각하라"는 말이 적힌 작은 구리 표지판을 설치하라고 지시했겠는가?
다섯 번째 강의 : 예언자, 교수 그리고 도사로 자칭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1987년 10월 19일의 주가폭락 이후에 몰아닥친 대중들의 혼란은 전문가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이때를 1929년과 비교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29년의 경고는 실업, 문을 닫은 공장들, 은행원들이 길에서 사과장사에 나서거나 구두를 닦는 모습 등이다. 낮은 실업률에 고용이 최고조에 달했으며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그런 상상이 가능이나 한가?
-"1987년의 상황을 1929년과 비교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라고 나는 썼다. 대중도 이를 인식하고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약간의 금리 상승이 큰 피해를 야기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1929년의 악몽도 결국에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잘못 붙여진 이름 : 벤처회사의 정크본드
-은행원은 안전한 투자처를 찾는 반면에 상인은 환상을 좇는다. 사람들은 이편이거나 또는 저편이다. 그들은 언제나 입장이 다르다.
-자본주의에서 모험 없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란 없다. 오늘날의 증기기관, 자동차, 그리고 전자계산기의 발명과 도입은 자신들의 돈을 걸고 환상을 자유롭게 좇은 모험가들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밖에도 미국의 마천루,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또는 세계의 다른 놀라운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전 세계가 모험 또는 요즘 말로 '벤처'이다.
-'정크 본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크'라는 말은 고철 또는 누더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정크 본드는 어느 정도 위험을 안고 있는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투자이다.
사람들은 도사를 믿지 않으며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도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 의미가 없다. 만약 그가 교수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결코 교수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 또는 증권시장의 예측에는 쓸모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차라리 점성가나 점쟁이의 말을 믿는다. 특히, 나는 프랑스 문학에 있어서 아마도 가장 명민한 사람 중 하나인 미셸 드 몽테뉴의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아들이 혼란스런 집회보다는 차라리 술집에서 말을 배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모든 점괘와 예언들에 대해 아주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또한 이들에 대해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중들은 빠르게 잊어버린다. 투자금액이 크면 클수록 더욱 더 진지하게 거기에 빠져들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귿곳에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예언가들을 원하며, 누군가가 한 두 번 정확한 예측을 하면 그를 증권시장의 도사로 떠받든다. 정치, 경제 또는 학문으로부터 얻게 되는 내부자들의 예측과 증권시장의 암시들은 스스로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예측이나 암시보다 덜 맞아떨어진다.
코스톨라니의 낙관적 학교
-미국 증권시장의 프로들이 통계의 노예로 전락해버린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비관주의자들이 되어버렸다.
-월스트리트의 시세가 밀실의 협약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 미국의 실업률 증가 소식은 월스트리트의 증권인들을 혼란속으로 빠뜨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앞으로의 경기변동에서 카다란 하향곡선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반대로 나타났다. 이미 1년 전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그린스펀 의장은 모든 대중매체에 "성장 억제를 통해 경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미국 경제성장률을 2~2.5퍼센트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소견을 밝혔었다. 바로 그것이 이제 이루어졌다. 그래도 투자자들은 다시 뭔가 불만스러운 것을 찾아내고 있다.
-전정한 프로는 단기간의 변동, 아랍의 독재자, 또는 실업률 따위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다우존스는 두 번이나 2,999.75포인트를 달성했다. 그것은 차트 분석가들에게 경고를 의미한다. 만약 지수가 장벽을 넘을 수 없다면 지수는 당장 다시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미국 증시를 측정하는 데 아무 의미도 없는 종합지수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3,000포인트 장벽은 예를 들어 1,000 또는 2,000포인트 대와 마찬가지로 증권시장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1925년 이래 보통 주식들의 주가가 수백배로 뛰었으며 우량주들의 시세는 그보다 25배가 더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나는 겸손을 다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 8년 동안 경제의 붕괴를 예언했던 모든 도사들이 지금까지는 틀렸다. 그들은 "그래,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라고 의기양양하게 알릴 수 있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증권시장은 완전히 별개의 세상이다. 1939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 시세가 갑자기 높게 치솟았던 것과 같은 현상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미국 유가증권 매니저들은 1,900에서 거의 3,000포인트까지 올라간 다우존스 지수의 상승을 놓쳤다. 그 때부터 그들은 시세 뒤를 따라가고 있다. 시세는 언제나 그들보다 한 발 앞서 있다. 이제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은 시세가 떨어지면 다시 승차하고자 한다.
-예언가들은 날마다 모든 사소한 일들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곧 들어딕칠 인플레이션의 징후로 해석한다.
아주 낮은 실업률 - 나쁘다!
많은 새로운 일자리들 - 나쁘다!
수출의 증대 - 또한 나쁘다. 왜냐하면 수출 증대는 활력 있는 경제를 더욱 더 활력 있게 하여 인플레이션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방적이고 근시안적으로 뉴스를 따라가는 것은 증권시장에서는 완전히 미친 짓이다. 투자자는 폭넓게 생각하고 멀리 보아야 한다. 금리가 상승한다 하더라도 급격히 증가하는 기업의 이윤과의 관계에서 본다면 반드시 너무 높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금리는 브레이크 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 브레이크 노선이 폭락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또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지난 일 년 동안 금리를 서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올렸기 때문에 경기 냉각 징후가 이미 느껴지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금리정책을 통해 경제 성장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끊임없는 인플레이션 걱정에 시달려온 사람들은 최선의 방어책은 금이 아닐가 하고 스스로에게 다시금 질문해 보게 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금은 죽은 자본일 뿐이다. 금의 시세는 여전히 낮다.
-그렇다면, 더디지만 과격하지 않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어떤 것이 최고의 투자일까?
"금이 아닙니다. 은도 아닙니다. 순수한 평화시의 물건입니다. 바로 주식!"
-비관적 견해를 가진 교수, 경제학자, 경제 전문가들의 학교가 있으며 국영은생의 파산, 금융위기, 금리의 대혼란 그리고 이와 유사한 불행을 점치는 폭락예언가들과 상습적 비관주의자들이 이에 합류하고 있다. 여기에 나는 이러한 전문가들에 반대하는 낙관적 학교이 설립을 공표하노라! 지원자는 대환영입니다.
여섯 번째 강의 : 증권시장과 그 나머지 세계
-투자자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아주 완고하고 흔들림이 없는 입장에 있었던 것만으로 많은 주식 투자자들이 대단한 성공을 했다는 것을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여러 증권시장의 대다수 투자자들은 이와는 반대로 정치적인 사건들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안전수칙 제1조로 삼고 있다. 그들은 모든 일들을 자신들의 증권 투자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
정치화된 주식시장
-정치인들이 투기꾼들을 방지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최소한 자신들의 말을 삼가야 한다. 이것은 모든 증권시장과 여타 시장들에서 자명한 이치이다. 투자자들이 상품, 화폐 또는 증권에 대해 시세상승이나 하락을 기다리고 있거나 또는 대중매체에 의존해 이를 행한다면 그들은 원하는 가격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투자 대상물을 다량으로 사들이거나 팔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이러한 히스테리 속에서는 더 이상 심사숙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군중심리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논리와 경제적 사실에 역행하는 시세운동의 끝은 붕괴이다. '아주 확실한' 투자를 했던 투자자들은 실망을 하게 되며 벌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론 최고시세에 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살까, 팔까를 망설이는 투자자들은 결국 돈을 잃게 된다.
빨간자전거
-"대포소리가 천둥칠 때 사고, 바이올린의 부드러운 음악 속에서 팔라."는 증권시장의 오래된 격언은 오늘날에는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증권시장에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운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은 앞을 헤쳐 나갈 수 있어야 하며 사리가 밝아야 한다.
-나는 아주 오랜 전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투자를 하는 사람은 결코 뉴스를 뒤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주식투자가 '장안의 화젯거리'일 때
-주식투자가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 투자자들은 무조건 하차해야 한다.
일곱 번째 강의 : 나의 증권시장 동물원
곰과 황소
-증권시장은 얼룩덜룩한 무늬의 세계이며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정글의 축소판이다. 가여운 패자들이여. 프로세계는 영원한 싸움터이며 이곳에 가장 잘 적응하는 두 부류로 이루어진 한 시스템이 지배한다. 그 두 부류는 시세하락 투자자와 시세상승 투자자, 또는 앵글로 색스족이 너무나 정확하게 표현한 곰과 황소이다.
-황소는 투자자의 상징이다. 그는 선두에서 돌진하며 그의 뿔을 가지고 모든 것을 높이 던져 올리려 한다. 물론 무엇보다도 가장 높이 올리려 하는 것은 시세이다. 시세하락 투자자는 곰을 잡기도 전에 그 가죽을 팔려고 하는 사냥꾼과 같다. 그가 만약 곰을 잡지 못하면 너무 빨리 팔았던 가죽을 다시 사야 하는 손실이 발생한다.
-세계의 모든 증권시장에서 황소는 곰을 좋아하지만 곰은 황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하락장 투자자는 모든 뉴스를 비관적으로 평하고, 같은 뉴스에 대하여 상승장 투자자는 낙관적 해석을 내놓는다.
-황소와 곰은 그들의 물질적 관심에서도 마찬가지로 반대 입장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의 출발은 두 편의 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설명했듯이 많은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심리적 요인들과 여러 가지 종류의 측정할 수 없는 것들에 달려 있다.
-황소들은 시세가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은 시세가 상승하는 것을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또한 시세가 폭락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게다가 상승장에 투자하는 얼간이들은 나중에 주가가 하락하여 입게 되는 손해보다는 증시가 상승세일 때 참여하지 않아 잃게 되는 돈을 먼저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와는 반대로 곰들은 하나의 비뚤어진 동경 속에서 고통을 찾아다니는데 그것이 다른 사람의 고통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어느 시인이 그들의 그런 모습을 다음과 같이 읊은 바가 있다.
"신은 하락장 투자자를 경멸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의 돈을 탐내기 때문이다."
그것 또한 맞다. 왜냐하면 하락장 투자자는 다른 사람들이 주가 하락으로 고통스러워할 때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상승장 투자자는 다른 사람들의 손해로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의 성장에 따른 주가의 상승으로부터 이익을 본다. 하락장 투자자는 다른 사람들이 슬퍼할 때 개가를 울린다. 경험에 의하면 백 명의 증권시장 프로들 중에 하락장 투자자는 다섯 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이상한 사람들은 황소와 곰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론적 게임가처럼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부류는 단지 생각으로만 매수하고 매도한다. 또 머릿속에서만 이윤과 손실을 장부에 기입한다. 그러나 지갑은 아무것도 느끼질 못한다. 이러한 게임가들은 이론상으로 이윤을 얻게 되면 행복감을 느낀다.
-욕망의 크기에서도 프로들은 각기 다르다. 겸손한 사람과 주의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안전한 것이 안전해"라고 생각을 한다. 적은 이윤으로는 그 누구도 침몰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10퍼센트의 이익을 얻고도 행복하게 그곳에서 나간다. 그리고 또한 야심적인 투자자들이 있다. 그들은 단지 커다란 대박에만 기대를 하고 작은 것에 벌벌 떠는 사람들은 결코 큰 것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떠들어댄다. 그들의 말은 사실 옳다. 누구라도 증권시장 같은 곳에 일단 발을 들여놨다면 그 값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경건한 유대인들도 다음 속담을 통해 그런 생각을 드러냈다.
"기왕에 돼지고기를 먹으려면 기름이 흠뻑 든 부위를 먹어라."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행운아들은 언제나 제대로 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증권인들은 그들의 주식이 몇 포인트라도 올라갔을 때 얼굴을 찌푸리는 보기 흉한 특성을 갖고 있다. 이윤을 냈을 때는 이야기를 하고 잃었을 때는 침묵을 지킨다. 그들은 모든 것을 예견했다는 것이 이런 말을 반복한다.
"내가 전에 그렇게 말했잖아!"
그들은 언제나 가장 낮은 시세에서 샀으며 가장 높은 시세에서 팔았다. 그들은 자신을 천재로 여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거짓말쟁이로 여긴다.
-이번 강의 서두에 언급했듯이 모든 증권시장 동물들은 다음 두 가지 기본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1.비관론자, 고리대금업자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 구두쇠형, 모든 위장병 환자 및 늘 기분이 나쁜 사람들. 이들은 타고난 하락장 투자자이다.
2.낙관론자, 방탄자, 모험가, 낭비가 및 경솔한 사람, 하늘에서만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는 낭만적인 사람들(그들은 자신의 돈을 곧장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들은 언제나 상승장 투자자이다.
아주 특이한 부류 : 투자자
-순종 투자자는 우리가 말하는 일반 투자자와 증권 거래인 사이의 중간 어디쯤에 속하는 사람이며 그 둘을 거의 혼합시킨 존재라고 볼수 있다.
-활동적인 투자자는 그들의 투자를 항상 주가와 시세의 순환적 변동에 적응시킨다.
-투자자는 얼마나 특이한 인간인가. 아무리 보잘것없는 철학자라도 태어날 때부터 철학자로 태어나듯이 투자자 또한 타고나는 것이다. 투자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잇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다가는 또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며, 그와 만나는 모든 것들의 이득과 손실을 따진다. 그는 이로부터 내린 결론을 토대로 해서 어떤 주식을 사거나 판다. 만약 그의 생각이 맞았다면 그는 증권시장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만약 틀렸다면 그는 증권시장에 벌금을 낸다. 이것이 투자의 본질이다.
-투자자가 유사한 상황을 언제나 다시 기억 속에 되살릴 수 있으려면 그는 충분한 경험을 필요로 한다. 위대한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발명은 10퍼센트의 영감과 90퍼센트의 땀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이 말을 증권시장에서 고쳐 쓰면 90퍼센트의 땀 대신에 90퍼센트의 경험이 될 것이다. 투자자는 거의 무의식중에 더하고, 빼고, 또한 곱한다. 작가 한 사람이 그의 작품에 대해서 여러 번 원고를 고쳐 쓰듯이, 또 음악가 한 사람이 그의 음악에 온 심혈을 기울이듯이, 투자자는 그의 생각에 공을 들인다.
-투자자는 결코 백과사전이어서는 안 된다. 그는 다만 올바른 순간들의 관련을 알아야 하며 이에 맞춰 행동을 해야 한다. 절대로 많은 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 단지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으면 된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기만의 시간을 자유롭게 마음대로 처리하는 이 귀족은 안락의자에 기분 좋게 앉아서 장사꾼들의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한 채, 자신이 피우는 담배연기 속에 쌓여 생각을 한다. 그의 도구는 전화기와 라디오, 그리고 신문뿐이다.
-영국의 귀족으로 추대되었고 확실히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국민경제학자였던 존 메이나드 케인즈도 정열적인 투자자였다.
"존 케인즈, 그는 노동 없이 재산을 모았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는 즐거움, 그뿐 아니라 욕정이 요인이 된다. 마지막에는 단지 돈을 탐내는 금전욕이다. 다행히도 나는 지금 비로서 두 번째 단계에 있다. 여전히 증권시장은 나에게는 하나의 욕망인 것이다.
여덟 번째 강의 : 기업가, 고객 및 다른 슬라브인
고객은 바로 적이다
-증권시장에서는 "고객은 적이다"라는 유명한 프랑스 격언이 있다. 일반적인 사업 활동에서는 대부분 "고객은 왕이다"가 적용된다. 그러나 금융세계에서는 프랑스 격언이 더 들어맞는다. 사람이 금융세계에서 만큼 모든 것을 겪어 볼 수 있을까! 고객을 얻는 것은 하나의 위대한 예술이다. 그것은 많은 심리적 재주와 능력을 요구한다. 600명의 고객 중에는 날마다 주식 매매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년에 겨우 한번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매우 흥미롭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인간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재미가 없고 특색도 없는 보통 사람들도 있었다.
-나의 고객들은 소매치기로부터 왕족의 후손들까지, 술집주인에서부터 고위 성직자까지 그 성격이 매우 광범위하였다.
-나는 브로커나 은행원들에게 결코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한번도 그들의 생각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도 나에게 전혀 책임이 없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암시를 속삭이게 되면 나는 언제나(나의 오랜 신조 "정보는 곧 파멸이다"를 기억하며) 정확히 그것과는 정반대로 한다.
아홉 번째 강의 : 작은 증권시장 심리학 (미신, 우상숭배, 도박벽)
-투자자는 거의 대부분 미신을 믿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투자자는 모든 관점에서 논리적이고 그것을 기초로 가장 확실한 논증을 위한 논제를 세우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투자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냥 "운이 없었어."라고 말해버린다. 그렇게 실패를 불운으로 돌릴 때 그는 이미 미신을 믿는 사람이 된다.
-미신은 그러나 자주 직관과 결부되어 있으며 직관은 매우 쓸모가 있다. 만약 사람들이 증권에 투자했는데 자신이 배를 잘못 탔다는 느낌이 들면 그 즉시 배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그러나 먼저 자신이 탄 배가 잘못된 배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그것은 확신과 직관의 혼합이다. 중개인 한 사람의 생각에 사람들은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
-투자자는 여자의 말 한마디도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 여성들이 특히 섬세한 직관과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남자들의 논리적 확신을 보충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직관은 실제로 무의식적인 논리와 결코 다르지 않다. 무의식의 논리는 다시금 환상과 혼합되어 장기간의 증권시장에서의 경험과 삶의 경험이 합쳐진 하나의 그림을 그려낸다. 밤중에 무의식의 사고를 통하여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리고 아침에 그 아이디어는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직관, 영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혼자서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나도 조금은 미신적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특히 좋은 행운이 나와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그것으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낸다.
-나는 많은 부적들도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 몇 개는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닌다. 내가 가장 아끼는 부적은 작고 투명한 십자가이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투자와 관련된 일들을 단지 미신에 의존해서 해결하려 한다면 그들은 게임꾼이다. 젊었을 때는 나도 그랬다. 나는 게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통을 통해 배웠다.(주목 : 투자에서 벌어드린 돈은 고통의 돈이다, 먼저 고통이 오고 나서 돈이 들어온다) 이제 나도 아마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완고하고 보수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오늘 날 별 해가 없는 약간의 미신과 주물숭배를 사치품처럼 가끔씩만 행하고 있다.
-우상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변하지만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드시 신봉자들을 실망시킨다는 것이다.
-원유가격과 달러시세에 대한 원유가의 표면상 영향은 1970년대에는 내가 방금 언급하였던 것처럼 하나의 시장의 우상이었다. 후에는 성장률이 새로운 우상이 되었다. 더욱 허무맹랑한 것은 선물투기의 대상이다.
-게임가들은 귀금속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내게 이러한 모든 이론들은 대중의 어리석음으로 여겨진다. 이런 것들은 중개인에게만 좋은 일이 된다. 왜냐하면 중개인들은 고객들에게 늘 무엇인가를 제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중개인들이 그들의 생각을 매일 바꾼다는 사실을 무시하더라도 그들의 예견은 거의 맞는 법이 없다.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에 나오는 파게 오스카는 이렇게 노래한다. "오스카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브로커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증권시장과 룰렛-그들 모두가 게임꾼
-복권이든, 룰렛이든 또는 증권시장이든 나는 학문의 가죽을 뒤집어쓴 이 게임가들을, 그들이 어떤 도구를 이용하든지 상관없이, 미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증권시장의 차트 분석가들도 어느 정도는 미친 사람에 속한다. 브로커들이 그들을 철저하게 보호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차트를 가지고 하는 게임이 최고의 수수료를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차트를 통해 사람들은 어제가 어떠했고, 오늘이 어떠한지를 가장 확실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다. '어깨-머리-어깨(막대모형)', '측면모형', '찻잔 받침대' 그리고 비슷한 부류의 각종 차트 형태들에 현혹되는 것은 "돈을 죽이는" 행위와 다름없다.
-로버트 프렉터가 증권시장 편지와 그의 책을 통해 선전을 한 그의 '엘리어트 파동이론'은 내 눈에는 커피를 내리고 남은 찌꺼기를 읽는 것과 동일할 뿐이다. 그는 주식을 공매도할 것을 추천한다. 시세는 물론 상승한다. 그러면 신봉자들은 시세가 몇 포인트 올라갔기 때문에 곧장 비축을 해야 한다. 그런 추천을 그는 몇 달 동안 일주일마다 반복하였다. 그의 말을 따른 사람들은 그 결과 일주일마다 거의 모든 돈을 날려버리게 되었다.
-나는 증권시장에서 차트 분석가로 성공을 했다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한 그들은 모두 망했다.
사람은 벌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미친 사람에게 최대의 불행은 그가 게임시작과 동시에 돈을 땄을 때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그는 미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분명히 룰렛 게임가는 이기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기호는 잃어버리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가 즐기는 것은 원초적인 신경의 욕망이지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만장자 중에서도 열렬한 게임가를 찾아볼 수 있다. 얼마의 액수로 그들이 그들의 행운을 테스트하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도박은 하나의 약물이며 몰핀 또는 코카인처럼 중독자들을 몰락시킬 수 있다.
-게임가들의 일상생활은 운을 시험하는 것의 연속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의 소설 [노름꾼]에서 표현했던 것처럼 "룰렛게임에서 만약 구슬이 이미 열 번이나 빨간색에 머물러 있다면, 그 누구도 더 이상 빨간색에 걸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증권시장 참여자들도 '검은색 시리즈'가 오래 지속되면 '검은색 시리즈'는 당연히 끝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이 생각하기에 시세가 오랫동안 너무 높았다면 반드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통계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개별적 경우에 즉 증권시장의 아주 특정한 날에 사람들은 시세가 오를 것이다, 또는 내릴 것이다 라고 결코 사전에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때로 빨강 또는 검은색 시리즈는 아주 오래 갈 수 있다.
증권시장 중독자
-증권시장에도 중독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곳은 매우 특이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매우 혼잡스로운 싸움터 안에서 사람들이 숨 쉬는 공기는 하나의 약물처럼 작용한다. 첫 번째 투자에서 곧바로 좋은 결과가 나오자 내 친구는 점점 더 많은 주식들을 뉴욕, 유럽 더 나아가 호주에서까지 사들였다. 맨 처음에 그는 자신이 보유한 현금으로 샀으며, 그리고 나서 점점 더 유동성을 높이더니 결국에는 신용으로 샀다. 그의 증권 사업이 최고점에 도달했을 때 그는 계산을 해보더니 단 하루사이에 벌어들인 돈이 그의 가족에게 필요한 일 년 예산의 다섯 배로 늘어난 것을 발견하였다. 그때 그는 시세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도 감지하였다. 그리고 증권시장은 점점 어려워졌으며, 이익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그 결과 내 친구의 신경은 이런 흥분된 상태를 오래 견디지 못하였다. 어느 날씨가 좋은 날, 회의 도중에 그는 신경쇠약 악화로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는 모든 주식들을 팔았다. 내 친구가 요양소에서 휴양을 하고 있던 수개월 동안에 증권시장은 폭락하였다. 그것이 바로 1962년 봄, 전 세계의 증권시장을 공격한 엄청난 시세폭락이었다. 그의 건강이 그의 재산을 구한 것이다. 또한 나도 양심의 가책을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다. 그를 증권시장의 게임으로 인도한 것은 바로 나였다. 그러나 마지막이 좋으니 다 좋은 것 아닌가.
-그러나 만약 사람이 한 번 증권시장 전염병에 감염되면 그렇게 간단하게 치유되지 않는다. 만약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시세가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고, 만약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시세가 올라갈까 봐 불안해한다. 주가가 밑바닥에서 회복될 때 그는 신경질적으로 된다. 주식이 계속 높게 올라가면 그는 혼란에 빠지고 주가상승이 바로 문 앞에 서 있을 때면 그는 거기에 있지 않다.
-내가 투기의 역사를 한 문장으로 종합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건달이 태어났으며, 그는 게임을 하며 따기도 하고 또는 잃기도 하지만 절대로 죽지는 않는다." 그렇게 때문에 또한 나는 확신한다. 사람들이 주식과 증시에 대해 정말 역거움을 느끼게 만드는 증시침체 후에는 언제나 과거의 모든 상처들을 다 잊어버리고 불나방같이 증권시장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시간들이 반드시 다시 온다는 것을.
-그렇다면 증권시장은 미치광이와 바보들이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거이며 우선, 그들이 없는 증권시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다면 증권시장의 이익은 다 어디서 얻을 것이며, 증권시장이 존재할 수나 있겠는가?
열 번째 강의 : 미련한 사람들의 가치
-"모든 증권 시세는 단지 주식들이 바보들보다 많은지, 또는 바보들이 주식들보다 많은지에 달려 있다." 고맙게도 증권시장에는 매우 많은 바보들이 있다. 만약 바보들이 전혀 없다면 증권시장은 무엇이겠는가? 어느 나라에 머물든지 나는 증권시장 객장으로 찾아가길 좋아한다. 왜냐하면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1평방미터 안에 그토록 강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들이 우글대는 곳을 결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 번이라도 100에서 110으로 시세차익을 냈다면 단번에 천재라고 생각한다. 벌써 그는 그의 연간 소득을 새로 계산하기 시작한다. 불쌍한지고! 그들은 시장이 언제 다시금 그들의 빰을 혹독하게 올려붙이게 될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는 자기가 똑똑해서 이익을 얻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은 바보들로부터도 무엇인가를 배운다. 특히 따라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바보들로부터 배운다.
너무 약삭빠른 사람들
-증권시장의 사람들은 저편의 다른 그룹들이 자기보다 똑똑하다고는 인정하지 않지만 자기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옆집 잔디가 자기 집 잔디보다 더 파랗다고 보는 것이다.
-"박식한 바보가 알지 못하는 바보보다 더 큰 바보"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증권시장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자네들이 대학에서 배웠던 모든 학문적 지식은 곧장 그리고 과감하게 잊어버리게. 이것들은 앞으로 자네들이 일하는 데 단지 짐이 될 뿐이라네."
ISO와 나-인간의 어리석은 역사로부터
-사람들이 실제로 나로부터 듣고자 하는 증권시장에 관한 정보들을 나는 결코 자발적으로 준 적이 없다. 왜냐하면 정말 정확한 정보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차라리 중국의 한 격언을 들려주고 싶다. "만약 당신이 한 친구를 가지고 있다면, 그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선물해라.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에게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줘라." 그러나 나는 '부정적인 정보들과 경고들은 잊지 않고 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생각해 보라고 했다. 어떤 거래인이 컴퓨터 산업이라든지 아무튼 현재 큰 가격 상승을 누리고 있는 부분에 있다고 하자. 물론 주가 시세가 100에서 200으로까지 하면 그는 충분한 게임공간을 갖게 된다. 100에 샀다가 105에 팔고 110일 때 다시 사들이는 방식으로 수시로 넣었다 뺏다를 반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식으로 100에서 200으로 올라갈 때까지 계속 팔고 사기를 반복한다해도 그가 벌어들이는 돈은 결국 100이 아닌 40에 지나지 않으면 나머지는 공중으로 사라져버리게 된다.
-나의 비관적 입장은 수십 년 동안 증권시장에서 쌓아온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책임감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날카로운 비평을 할 수 있다. 그들은 증권시장과 투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소액 투자자들을 상대로 연간 15퍼센트 대의 이윤을 받게 될 것이라고 확언하였다. 이런 류의 증시 철학은 완전히 눈속임에 의지한 것이며 이를 확산시키는 것은 무서운 범죄이다. 사람들은 증권시장에서 이익을 볼 수 있으며,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 더욱이 물론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로 증권게임을 통해 연간소득을 고정된 몇 퍼센트로 확정지을 수는 없다.
-펀드매니저들 자신들도 연간 15퍼센트의 성장 가능성과 증시에서의 자신들의 게임 기술과 방법을 믿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투자 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증권시장이 앞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펀드매니저들은 자신들의개인적인 실패 책임을 증시에 전가하려고 했다. 시세가 떨어지는 것에 대하여 그들은 책임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열한 번째 강의 : 어떤한 증권시장도 똑같지 않다
-세계의 모든 증권시장들은 점점 파이프라인으로 서로 얽히고 있다. 따라서 상호 의존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세계 어딘가에서 버튼 하나를 누르면 5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그 미세한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증권시장이다. 태양이 절대로 지지 않는, 황제 칼5세의 제국과 같은 하나의 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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